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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 이희호 어머니께서 남긴 말
해승비휘  2022-09-20 07:05:55, Hit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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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탄생 100주년 ②] 서산보통학교, 이화고녀 시절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은 그의 당선으로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 여야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재임 중 IMF 국가 부도의 극복으로 국가 경제의 안정과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평화 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큰 업적을 남겼다. ?이희호 여사는 남편 김대중 대통령을 성공한 정치인으로 인도한 조력자다. 2022년 9월 21일은 이희호 여사 탄신 100주년 기념일이다. 그날을 맞아 이희호 여사의 인생 역정을 간략히 소묘한다. <기자말>



▲ ?이화고녀 1학년 당시(1936년) 학급 단체 사진이다. 당시 학생들은 댕기머리로 교복은 개량 한복인 검정 통치마에 자주색 저고리였다. 교사의 복장도 대체로 한복 두루마기 차림이 많았다.ⓒ 김대중 이희호 기념사업회?서산보통학교, 이화고녀 시절?이희호가 일곱 살이 되던 1927년, 그들 가족은 서울에서 충남 서산으로 이사를 갔다. 아버지가 서산 읍내에 '동아병원'을 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희호는 그 이듬해 서산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다.그때 여학생들은 머리를 땋은 데다가 자주색 또는 빨간 댕기를 달았다. 남학생들은 주로 검은색 무명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다녔다. 학생들은 책가방 대신에 보자기에 책을 넣고 둘둘 말아 어깨나 허리에 둘러 메고 등하교했다.?그때 어머니는 틈만 나면 맏딸 희호에게 일렀다.?"앞으로의 세상은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그 말씀 탓으로 1936년 이희호는 서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곧장 어머니의 후원으로 미션스쿨인 서울 이화고녀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 후 곧 일제의 국어(일어) 상용, 조선어 사용 금지로, 이희호는 우리 말을 할 수도 조선어를 배울 수도 없었다.이화고녀 입학할 당시의 교복은 개량한복인 검정 통치마에 자주색 저고리였다. 고녀 3학년 때에는 금강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 가장 높은 비로봉(해발 1639m)을 오른 뒤 표훈사에서 1박하고, 내금강으로 내려와 온정리에서 하룻밤을 더 잤다.4학년 졸업반일 때에는 그토록 선망했던 세일러복을 입을 수 있었다. 그 무렵 학교에서 단발머리는 부모의 허락을 받도록 했다. 그래서 이희호는 서산의 아버지에게 긴 편지를 썼다.?"단발은 평생소원이니 이를 허락해 주십시오."?곧 아버지는 단전한 붓글씨로 '단발을 허락함'이라는 답장을 보내주셨다. 이희호는 재학시절 연극을 무척 좋아했다. 이화고녀 1학년 때는 극본을 쓰고 연출 및 주연까지 맡았다. 이희호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화고녀 4년간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당시 이희호는 '공부를 많이 해서 이화여전 김활란 학장처럼 되자'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졸업할 무렵 어머니가 병환으로 시름시름 앓았다.???



▲ ?세일러복을 입고 단발머리를 한 이화고녀 4학년생으로, 맨 오른쪽이 이희호 학생이다.ⓒ 김대중 이희호 기념사업회?어머니의 소천?이희호는 어머니의 병환을 간호하고자 전문대학 진학 준비를 접고 졸업 후 곧장 서산 집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이희호가 서산 집에 내려간 지 사흘 만에 어머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는 혼자서 꺼져가는 목소리로 자주 노래를 불렀다. 그때 아버지가 불렀던 곡은 <클레멘타인>으로, 가사도 곡조도 몹시 구성지고 애잔하여 가슴을 후벼 파는 듯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6개월 뒤인 그해 가을, 새어머니가 들어오셨다. 곧 이희호는 집안살림에서 해방, 이화여전 입학시험 준비코자 자주 서울을 드나들었다. 이듬해엔 아예 서산을 떠났다. 어머니가 없는 집에서 맏딸은 '반어머니'라는데, 그때 이희호는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피지 않고 학업을 위해 밖으로 향했다. 그때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지 못한 게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았다고 한다.?그 동생들은 1970년 이후에도 단지 김대중의 처가 식구라는 이유로, 여권 발급이나 해외여행 등 엄청난 불편과 불이익을 당했다. 그래서 이희호는 동생들에 대한 회한은 더욱 깊었다.?그 시절 이희호는 스로로 자신에게 약속하고 다짐했다. '결혼하지 않는다' '건강해야 한다' '공부를 많이 하자' 그것만이 돌아가신 어머니 생전의 뜻을 이루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강력한 후원자(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이희호는 그 무렵 몹시 외롭고 쓸쓸한 가슴 아픈 나날을 보냈다.?(* 다음 회에 계속)[기자의 첨언] 왜 이 시리즈를 쓰는가?



▲ ?젊은 날의 이희호ⓒ 김대중 이희호 기념사업회이 기사를 읽는 독자 중 일부는 기자가 무슨 연유로 이 글을 연재하는가?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뒷이야기를 남긴다.나와 김대중 이희호 부부는 '교사와 학부모' 관계로 생전에 세 번 만났다. 그래서 이번 회에선 이희호 여사와 그 첫 번째 만남 얘기를 들려드린다.?1979년 3월, 그분의 아들(김홍걸)이 당시 내가 교사로 근무했던 이대부고에 입학했다. 그는 1-2반 학생이었고, 나는 1-3반 담임교사였다. 하지만 나는 국어교사로 수업시간에 자주 만났다. 그 이듬해 어느 여름날, 당시 김홍걸 학생 반인 2-1반 국어수업을 마치고 교장실을 지나는데, 마침 이희호 여사가 김연옥 교장선생님과 담소를 나눈 뒤 문밖 복도로 나오다가 마주쳤다. 그때 이희호 여사는 초췌한 모습으로 현관을 통해 바삐 귀가했다.?그때 그분 남편 김대중은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직후였다. 아마도 이희호 여사는 서울 사대 시절 학우였던 김연옥 이대사대 교수 겸 부속중고등학교 교장을 만나 아들의 안위도 부탁할 겸, 심중의 말을 친구에게 곡진히 쏟고 가셨나 보다. 43년이 지난 그때 이희호 여사의 초췌한 잔상이 아직도 뚜렷하게 떠오른다.다음 회 머리글에는 두 번째 만남 얘기를, 그 다음 회에는 세 번째 만남 얘기를 간략하게 들려드리겠다.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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